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리뷰|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천국과 지옥, 가장 무서운 전쟁영화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를 처음 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전쟁영화인데 전투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총을 쏘는 병사도 거의 보이지 않고,
탱크가 등장하지도 않으며,
거대한 폭격 장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가 끝난 뒤에는 다른 어떤 전쟁영화보다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오히려 너무 평범하기 때문입니다.
정원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가족이 식사를 하고,
아내가 집을 꾸미고,
남편이 출근합니다.
그리고 담장 너머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2023년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이 만든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배경으로 합니다.
영화의 중심에는 실제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Rudolf Höss)와 그의 가족이 있습니다.
회스는 1940년부터 아우슈비츠의 초대 수용소장을 맡았고, 가족과 함께 수용소 바로 인근의 집에서 생활했습니다. 아우슈비츠 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회스의 가족이 살던 집은 수용소 담장에서 불과 약 30m, 화장시설 굴뚝에서는 약 170m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이 사실만으로도 영화가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옥과 일상이 실제로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존했던 것입니다.
저는 34년 동안 군에서 생활하면서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전쟁영화에서 전투 장면을 먼저 봤습니다.
하지만 군 생활을 오래 하고 나서 다시 본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는 총과 전차보다 더 무서운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사람이 비극에 익숙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 바로 옆에서 시작된 평범한 하루
영화는 관객을 전쟁터 한가운데로 데려가지 않습니다.
대신 한 가정의 집으로 데려갑니다.
아버지는 일을 하고,
어머니는 집과 정원을 관리하며,
아이들은 평범하게 생활합니다.
가족만 놓고 보면 마치 어느 평화로운 가정의 일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집의 담장 너머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수용소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소리를 들려줍니다.
멀리서 들리는 총성.
사람들의 고함.
기계음.
불길한 소음.
그리고 연기.
화면 속 가족들은 그 소리에 익숙한 듯 일상을 이어갑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담장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면 속 가족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영화는 이 불편한 간격을 끝까지 유지합니다.
제목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무슨 뜻일까?
영화 제목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Zone of Interest'는 아우슈비츠 주변에 설정된 수용소 이해구역을 가리키는 표현과 연결됩니다.
아우슈비츠는 단순한 하나의 수용시설이 아니었습니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는 여러 시설과 수용소가 결합된 거대한 복합체였고, 주변 지역 역시 SS의 통제 아래 놓였습니다. (아우슈비츠)
영화는 바로 그 공간을 배경으로 합니다.
하지만 감독이 보여주는 것은 수용소 내부가 아닙니다.
오히려 수용소 밖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이 선택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루돌프 회스다
루돌프 회스는 영화 속에서 특별히 괴물처럼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처럼 보입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가족과 식사를 하고,
정원을 관리하고,
집안의 생활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아우슈비츠의 책임자입니다.
그가 맡았던 것은 단순한 일반 행정업무가 아니었습니다.
아우슈비츠는 나치의 대량학살 체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1942년부터 대규모 가스실과 화장시설이 건설되면서 학살 시스템이 확대됐습니다. (아우슈비츠)
이 두 모습이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존재합니다.
가정에서는 평범한 가장.
수용소에서는 대량학살 시스템의 관리자.
영화는 바로 이 모순을 관객에게 던집니다.
가장 무서운 장면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장면이다
보통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라면 끔찍한 장면을 직접 보여줍니다.
하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반대 방향으로 갑니다.
잔혹한 장면을 최대한 화면 밖으로 밀어냅니다.
대신 소리로 전달합니다.
그리고 관객의 상상에 맡깁니다.
저는 이 방식이 상당히 무섭다고 느꼈습니다.
화면에서 직접 보여주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장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리만 들리면 머릿속에서 그 장면을 만들어야 합니다.
담장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불편합니다.
아이들이 정원에서 놀고 있는 동안 멀리서 총성이 들립니다.
가족이 식사하는 동안 수용소의 소음이 들립니다.
집안에서는 평범한 대화가 이어지는데,
관객은 그 대화 뒤에 존재하는 현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소리가 배경음이 아니라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느껴집니다.
34년 군 생활을 하며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전쟁영화에서 흔히 보던 '용기'나 '전투력'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이런 현실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군 생활을 하면서도 반복적으로 느꼈던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같은 상황을 계속 경험하면 처음과 다르게 반응합니다.
처음에는 긴장했던 일도 반복되면 익숙해집니다.
처음에는 크게 느껴졌던 위험도 반복되면 일상의 일부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군에서는 이것이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관리되기도 합니다.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실제 위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익숙함이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될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줍니다.
사람이 고통에 익숙해지는 것.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면서도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결국 그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저는 이것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던지는 가장 무서운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은 총을 쏘는 사람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생각할 때 흔히 전투원을 먼저 떠올립니다.
총을 쏘는 병사.
폭격기를 조종하는 조종사.
전차를 모는 전차병.
하지만 거대한 전쟁은 전투원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명령을 만드는 사람,
명령을 전달하는 사람,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
물자를 공급하는 사람,
시설을 관리하는 사람 등 수많은 사람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학살 역시 단순히 몇몇 개인의 폭력으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거대한 관료적 시스템과 조직이 사람을 분류하고 이동시키고 수용하고 살해하는 과정에 관여했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시스템의 일상성'을 보여줍니다.
끔찍한 결과가 만들어지는 동안 누군가는 서류를 작성하고,
누군가는 시설을 관리하고,
누군가는 업무를 처리하고,
누군가는 퇴근해서 가족과 저녁을 먹습니다.
이것이 영화가 관객을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악마처럼 생긴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속 회스는 전형적인 악당처럼 묘사되지 않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무서운 표정을 짓는 악당도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평범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처음부터 특별히 잔인하게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대규모 범죄는 평범한 외모의 사람들에 의해 조직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악은 반드시 특별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아니면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조직되고 실행될 수 있는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후자에 가까운 답을 보여줍니다.
회스 가족의 '행복'이 불편한 이유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부분은 가족의 행복입니다.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뛰어놉니다.
가족은 휴가를 계획합니다.
아내는 지금의 생활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하지만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사람들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집의 아름다움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정원의 꽃이 아름다울수록,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평화로울수록,
담장 너머의 현실이 더욱 잔혹하게 느껴집니다.
행복한 일상이 누군가의 고통 위에 세워질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끔찍한 역설입니다.
영화 속 '담장'은 단순한 담장이 아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담장을 하나의 상징으로 보게 됐습니다.
담장은 사람과 사람을 분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과 현실을 분리하는 역할도 합니다.
담장 안에서는 가족이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담장 밖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두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소리가 들립니다.
연기가 보입니다.
사람들의 물건이 집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은 가족의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담장은 물리적으로는 경계를 만들지만 도덕적인 책임까지 차단해주지는 못합니다.
이것이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했던 부분입니다.
군에서 배운 '책임'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다
34년 동안 군에서 생활하면서 '책임'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지휘관에게 책임은 단순한 단어가 아닙니다.
부하의 행동에 대한 책임,
임무 결과에 대한 책임,
잘못된 판단에 대한 책임,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결심으로 발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입니다.
그래서 지휘관은 명령할 때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이 명령의 결과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면서 이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조직에서 직책이 높아질수록 권한이 커집니다.
하지만 권한이 커질수록 책임도 커져야 합니다.
그런데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을 분리해버리면 조직은 위험해집니다.
영화 속 회스는 거대한 시스템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현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스템을 관리하고 실행하는 책임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책임은 오히려 더 무겁습니다.
이 영화가 다른 전쟁영화와 다른 이유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전쟁터에 들어간 병사들의 공포를 보여줍니다.
《퓨리》는 전차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승무원들을 보여줍니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저격수의 심리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전쟁을 바라봅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일상에서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영웅이 거의 없습니다.
승리의 카타르시스도 없습니다.
관객이 환호할 만한 전투 장면도 없습니다.
대신 불편함이 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불편함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 영화가 단순한 과거 이야기가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수많은 전쟁과 분쟁을 뉴스로 접합니다.
하지만 화면을 끄면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아침을 먹고,
출근하고,
커피를 마시고,
가족과 저녁을 먹습니다.
멀리 있는 전쟁은 어느 순간 우리에게 배경이 됩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바로 그 익숙함에 질문을 던집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 내 일상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놓치게 되는가?
물론 모든 사람이 모든 비극에 동일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순간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는 필요합니다.
실제 역사와 영화는 어디까지 같은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실제 인물과 실제 장소를 바탕으로 합니다.
루돌프 회스는 실제 아우슈비츠 초대 수용소장이었고, 그의 가족은 실제로 수용소 인근에서 생활했습니다. 아우슈비츠 박물관은 회스가 아내와 다섯 자녀와 함께 수용소 담장 가까이에 있는 빌라에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다만 영화의 모든 장면을 역사적 기록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영화는 마틴 에이미스의 동명 소설에서 출발했으며,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이 실제 인물을 영화의 중심에 가져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TIME)
특히 영화는 회스 가족의 일상을 통해 역사적 사실의 전체를 재현하기보다 가해자의 일상과 무관심이라는 주제를 극단적으로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역사 다큐멘터리라기보다 실제 역사와 인물을 바탕으로 만든 매우 독특한 역사 드라마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침묵'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저는 한동안 소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보통 전쟁영화에서는 폭발음이 영화의 긴장감을 만듭니다.
하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는 반대로 일상의 소리가 무섭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
정원에서 들리는 소리.
가족들의 대화.
그리고 그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멀리서의 총성.
이 소리들이 한 공간에 겹쳐집니다.
그 순간 관객은 깨닫습니다.
비극은 항상 시끄러운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이 무너지고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한 하루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이 가장 끔찍합니다.
34년 군 생활을 마치고 이 영화를 보며 남은 생각
군 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전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 전쟁은 언제나 상상과 기록을 통해 접근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저 역시 군에서 수많은 훈련과 대비태세, 지휘와 판단을 경험했지만 실제 전쟁의 참혹함을 모두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영화를 볼 때 조심스럽습니다.
전쟁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34년 동안 군에서 생활하며 한 가지는 분명히 배웠습니다.
전쟁은 명령서에 적힌 문장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것.
한 번의 판단이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고,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군에서 '책임'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무거웠던 것 같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그 책임이라는 단어를 극단적인 역사적 상황 속에서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마무리 – 가장 무서운 것은 담장 너머가 아니라 담장 안의 평온이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흔히 생각하는 전쟁영화가 아닙니다.
총격전도 거의 없고,
전차도 없고,
영웅적인 전투도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잔혹한 장면을 직접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게 합니다.
그리고 담장 안에서는 한 가족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 대비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실제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와 그의 가족이 수용소 인근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은 영화의 설정이 단순한 상상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아우슈비츠)
결국 이 영화가 우리에게 묻는 것은 단순합니다.
"당신이라면 담장 너머의 비극을 외면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더 무서운 질문은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지금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너무 쉽게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34년 동안 군 생활을 하며 저는 전쟁을 대비한다는 것이 단순히 무기를 준비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위협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이상 징후를 놓치지 않고,
상황을 판단하고,
필요한 순간 행동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생명과 존엄성을 지키는 것.
그것이 결국 안보와 군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전쟁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전쟁의 가장 무서운 얼굴을 보여줍니다.
총성이 들리는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총성이 들리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계속하는 세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제가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된 문장은 이것입니다.
"담장은 사람을 가릴 수는 있어도, 역사의 책임까지 가릴 수는 없다."